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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재미화가 이상남 그가 말하는 자신의 미래와 뉴욕 라이프

종희수 2008. 5. 6. 14:25

재미화가 이상남 그가 말하는 자신의 미래와 뉴욕 라이프

 

현대 미술의 물결이 갈수록 세차게 일렁이는 서울, 2008년 4월 단연 눈에 띄는 전시는 재미 화가 이상남의 개인전 <풍경의 알고리듬Landscapic Algorithm>이다. 서울에서 11년 만에 개최하는 개인전으로 그 규모가 대단하다. 뉴욕에서 창작 활동을 한 지 어언 27년이 된 이상남, 그의 작품과 뉴욕 라이프를 말한다.

 


수많은 아티스트가 꿈꾸는 뉴욕은 뜨거운 피로 펄떡이는 현대 미술의 심장이며 메카다. 그 중심에서 독창적 회화 언어를 구현해온 이상남은 뉴욕 평단과 세계 유수의 아트 매거진으로부터 주목받았으며, 최근 조선일보가 발표한 ‘100년 후에도 잊히지 않을 작가’에도 선정됐다.
2006년 신축한 LIG 손해보험 강남 사옥에는 그의 대형 작품이 8점이나 전시돼 있는데, 이는 건축 당시 함께 진행된 아트 프로젝트의 결과물이다. “당시 누군가가 제 작품을 보고 한국에 계속 있었으면 저런 색을 못 썼을 거라고 말했어요. 있을 수 있는 얘기죠. 도시가 주는 고유한 느낌이나 특징이 있으니까요. 서울에서 살 때와 뉴욕에서 살 때 옷차림이나 머리 모양이 달라지듯 표현에도 영향을 받을 거예요”라는 작가의 말은 뉴욕이 그의 창작에 어떤 영향을 끼쳤을까 하는 궁금증을 어느 정도 풀어주는 답안이다.

4월 10일부터 5월 7일까지 개최되는 개인전 <풍경의 알고리듬>에 전시할 작품은 극과 극을 내포한 듯하다. 클래식하면서도 모던하고, 화려한 문양 같기도 하면서 단순한 기호 같기도 하다. 복잡해 보이면서도 지극히 절제된 단순미도 느껴진다. 그러나 극과 극은 겉돌거나 충돌하거나 융화하지 않고 절묘하게 공존하며 긴장감을 조성한다. 미술 평론가 정신영은 이러한 긴장감이 “첫째 완전한 추상과 극단적 구상의 접합점에서 발생해, 둘째 나이브해 보이면서도 뇌리에 깊이 각인되는 색감 대비로 증폭되며, 셋째 익숙한 듯하면서도 파악되지 않는 기호들의 산재된 균형에서 절정을 이룬다”고 했다. 작가는 자신의 창작을 “문화 현상에 숨은 문법들과 그 문법들의 도치, 복제, 끊임없는 반복으로 나타나는 무한한 인공적 질문”이라고 설명하며 “내 상상은 자연이 아닌 인공에서 출발한 것”이라고 덧붙였다.
11년 만에 고국에서 여는 개인전. 그는 우리 미술계의 성장이 놀랍다고 했다. “여기 사는 사람은 잘 느끼지 못할 수도 있어요. 하지만 저처럼 다른 곳에 비켜서 있는 사람은 더 객관적으로 볼 수 있죠. 뉴욕의 10대 화랑에 견줄 만한 화랑이 서울에도 여럿 있어요. 정말 놀라운 일이죠. 상위와 하위는 있는데 그 중간이 없는 것이 차이점이에요. 앞으로 더 성숙해지려면 꼭 보강돼야 할 부분이죠.”

‘9 to 5’ 아티스트의 일상
이번 전시를 개최하는 PKM 트리니티 갤러리는 PKM 갤러리에서 청담동에 마련한 새 공간으로 규모가 594㎡(180평)나 된다. 이 대규모 갤러리의 개관 기념 전시에 이상남을 초대한 것은 전시 공간의 규모에 어울리는 파워와 무게감을 겸비한 작가인 동시에 확고한 뿌리를 가지고 새로운 회화 언어를 제시해온 작가이기 때문이다.
인생의 절반을 한국에서, 나머지 절반을 뉴욕에서 보낸 이상남은 뉴욕을 “무한한 상상과 새로운 아이디어에 대해 이 지구상에서 가장 열린 도시이자 모든 분야에서 경쟁 체제가 지극히 잘 이루어진 곳”이라고 표현하며 “그렇기 때문에 자기 목소리를 내야만 한다”고 강조했다. 이 말에서 지난 27년간 그가 얼마나 치열하게 살아왔는지 짐작할 수 있다. 매 순간 멈추지 않고 새로운 창작에 힘썼고, 엄청난 경쟁을 뚫어야만 통과할 수 있는 그 문을 향해 끝없이 도전했으며 스스로의 목소리로 당당히 인정받았다.
‘9 to 5’의 일상은 뉴욕의 비즈니스맨만이 아니라 아티스트도 마찬가지다. 그는 매일 아침 9시에 화실에 나가 저녁까지 작업에 몰두한다. 브루클린 머틀 애버뉴에 있는 화실에는 그가 연구하고 고뇌한 흔적이 고스란히 쌓여 있다. 점심은 부인이 싸준 도시락이나 화실 아래층 카페에서 간단히 해결한다. 예술가들이 정열적으로 창작하지 않으면 바로 도태되는 현실을 그는 결국 “빵의 문제”라고 단언한다. 문은 한정돼 있는데 예술가들은 전 세계에서 끝없이 몰려들기 때문에 그만큼 경쟁이 치열하다는 것이다.

“유명하다고 해서 용서되지 않고, 언젠가는 외면당하거나 잊혀질 수 있어요. 힘과 열정을 다른 데 소모하지 않고 고스란히 창작에 쏟아 붓는 것은 1차적으로는 생존을 위해서입니다. 예전에는 일주일 내내 일했는데 누군가 그러더군요. 신도 일주일에 하루는 쉬는데, 신에 도전하는 거냐고요. 요즘은 주말에는 되도록 일하지 않으려 해요. 누구를 만나는 일은 에너지 소모가 커서 약속을 잘 만들지 않는 편이에요. 쉬는 날이면 아내와 함께 센트럴 파크에서 시간을 보내죠. 하루 종일 하늘을 바라보면서….”
뉴요커의 삶, 게다가 예술가의 삶은 뭔가 특별하고 화려할 것 같다는 것은 대중의 환상일 뿐일까. 이상남의 휴일도 고요하고 소박하지만 다른 예술가들도 대개 비슷한 듯하다. 삼성 특검 관련 기사에 자주 오르내린 ‘베들레햄 병원’의 작가 프랑크 스텔라Frank Stella는 경마장에서 경마를 관람하는 것으로, 불가리아 출신 랜드 아트의 거장 크리스토Javacheff Christo는 매주 같은 요일 같은 시간에 부인과 함께 허름한 단골 중식당을 찾는 것으로 휴식을 갖는다고 한다. 이들의 휴식 방식에서 세상과 소통하면서도 편안하게 여유를 즐기고 싶어 하는 공통점이 보인다. 거장의 창작 시간이 그만큼 외롭고 치열하다는 방증일 것이다.

실제 나이 55세, 예술계 나이 35세
이상남은 스스로 야심가이자 승부사라고 평가한다. “실력을 인정받았다고 해서 한 스타일, 한 경향에 머물고 싶지는 않다”는 그의 말은 그런 기질을 느낄 수 있는 대목이다. 그가 뉴욕 미술계에서 자신이 차지하는 위치를 표현한 말이 재미있다. 실제 나이는 50대지만 뉴욕 예술가로서 나이는 35세, 계급으로 치자면 대령이란다. 곧 더 큰 성공을 앞두고 있으며 별을 딸 준비가 돼 있다는 것이다.
“27년은 결코 짧지 않은 세월이에요. 그사이 뉴욕에서 아시아 현대 미술의 위상은 정말 달라졌어요. 10년 후를 바라보고 지금처럼 해나간다면 분명 세계 미술사에 당당하게 내 자리를 하나 마련할 수 있을 거예요. 기대해보세요.” 그러고는 마르셀 뒤샹의 말을 인용한다. “그는 많은 예술가와 천재들이 유명해지는 방법을 몰라 자살했다고 했죠. 예술가의 수가 많은 오늘날에는 더 공감 가는 말이에요. 오늘날 현대 미술계에는 스타는 있지만 천재는 없어요. 더 이상 예술가의 천재성을 논하기보다는 그가 얼마나 치열하게 살아왔나를 보는 것이 진짜인지 아닌지 평가하는 더 나은 기준이 되는 거죠. 그리고 그것을 얼마나 많은 사람에게 잘 알리느냐 하는 것도 중요한 부분이고요.” 그는 놀라울 정도의 달변가였다. “그것도 뉴욕식이에요. 뉴욕에서 현대 미술가로 살아가기 위해서는 변호사가 되지 않으면 힘들죠. 휴지 조각이나 찌그러진 깡통에도 예술적 의미를 부여해 자신도 미치고 상대도 미치게 해서 미술관에 가게 만드는 것이 뉴욕의 프로들이니까요.”

뉴욕에는 책이나 뮤지엄에서만 보던 유명 작가가 차고 넘친다. “유명한 예술가와 어디서든 수시로 마주치니까 간이 더 커지는지도 모르죠. 한번은 척 클로스Chuck Close와 길에서 마주친 적이 있어요. 긴장감이 돌더군요. 그에게 한국식으로 공손하게 인사하면서 대선배에 대한 존경심을 표현했지요. 뉴욕은 그런 곳이에요. 그러니 ‘내가 뭐가 부족해서! 나도 할 수 있어!’라는 배짱과 자신감이 샘솟죠.”
그는 인터뷰 내내 “저는 운이 좋아요”라고 반복했다. ‘운이 좋다’는 말은 누가 하느냐에 따라 느낌이 완전히 다르다. 어쩌다 한 번 행운을 잡은 사람이 말했을 때와 최선을 다해 원하는 것을 거머쥔 사람이 말했을 때 그 느낌은 천양지차다. 게다가 그 말을 당당하게 거듭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자신이 걸어온 길에 후회 따위는 없을 것 같다. 아마도 그는 후자에 해당하리라. 그렇게 생각하니 곧 별을 딸 거라는 그의 말이 더 신빙성 있게 느껴진다.

Alma Corazon Y Vida - Claudio Y Juliana

 

출처 : 영심이네 집
글쓴이 : 영심이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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