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위의 미술관-제미란의 여성미술 순례/제미란 지음/if(이프)/1만8000원
▲당대 가장 걸출한 13인의 여성 미술가들을 한자리에=미술 이론서나 번역서는 많다. 명화읽기 책도 넘쳐난다. 그러나 이 시대 가장 걸출한 여성 미술가들의 삶과 작품을 쉽게 소개한 책은 없다. 13인의 세계적인 현대 거장들이 여기 한자리에 모였다.
뽕삐두 미술관 옆 스트라빈스키 분수 등 밝고 아름다운 공공 미술을 창조해온 니키 드 생팔, 94세의 나이로도 청년 같은 투지로 거대한 거미를 만들고 있는 루이즈 부르주아, 르노와르나 로트렉 등 인상파 화가들의 모델에서 스스로 화가가 된 몽마르트르의 서바이버 쉬잔 발라동, 프랑스 누벨바그의 어머니로 불리는 영화감독에서 설치미술가로 전방위적 활동을 펼치고 있는 아네스 바르다 등 프랑스 여성 작가들.
릴리스(Lil·ith)나 시렌느(Siren) 등 역사가 저버린 여성들을 신화적 주체의 이미지로 부활시키고 있는 키키 스미스, 천재적 재능으로 조각의 고정 관념을 바꾸는 실험적인 작업을 해나갔으나 뇌종양으로 요절해버린 에바 헤세, 대형 광장에 전광판과 텍스트 미술로 프로파간다 미술을 실천해온 제니 홀처 등 독일 여성 작가들.
게이, 드랙 퀸 등 아웃사이더로 살아가는 친구들의 삶과 사랑을 일기처럼 사진에 담아내고 있는 낸 골딘, 대표적인 반전 미술가로 영웅적인 여성 이미지를 창조해 온 낸시 스페로 등 미국 여성작가들.
더 이상의 설명이 필요 없을 멕시코의 화가 프리다 칼로, 초현실주의자들의 어여쁜 뮤즈로 머물 뻔 했으나 스스로 창조적인 작가의 길을 찾아간 레오노라 캐링턴, 대지와 몸이 일체되는 작업으로 고향 쿠바 토착인디언들의 의식을 부활시키려 했으나 고층 아파트에서 떨어져 비극의 생을 마감한 아나 멘티에타, 1960년대에 일찍이 예술과 비예술의 구분을 넘어 미술과 대중이 서로 소통하는 인터렉티브 예술을 실험해 온 리지아 클락 등 남미의 여성 작가들의 삶과 작품이 컬러 화보와 함께 소개되어 있다.
▲발로 쓴 미술 기행서=이 책은 책상머리에 앉아 미술책을 넘기며 쓴 글이 아니다. 사십 나이에 처음으로 길을 떠난 필자가 산 넘고 물을 건너 자신이 사랑한 여성 미술가들의 전시를 직접 찾아다니며 쓴 글들이다. 안이한 기행서가 아니라 ‘순례기’임을 강조하는 이유이다. 독자들은 필자의 손을 잡고 여성 미술가들의 작품을 직접 대면하는 동행의 체험을 하게 될 것이다.
▲보는 것이 아니라 만지는 미술읽기=지은이가 미술을 만나는 방식은 미술사적 지식에 압도된 객관적인 이해의 과정과는 다르다. 그림 속에 녹아있는 작가의 땀과 눈물과 영혼이, 보는 이의 영혼과 함께 만나 섞이고 삼투하는 과정이라고 말한다. 눈과 이성으로 보는 미술이 아니라 손과 가슴으로 만지는 미술 읽기인 것이다.
▲‘길 위의 미술관’은 페미니스트 저널 이프 완간 후 펴내는 이프의 여성경험총서시리즈 3권이다. 출간된 여성경험총서로 여자나이 마흔, ‘두 번째 스무 살’과 김신명숙의 페미니즘 카운셀링 ‘선택’이 있다.
◆‘길 위의 미술관’ 본문 중에서
1. 내 욕망에서 나를 지켜줘 -제니 홀처 Jenny Holzer
파리 유학 시작할 즈음, 하루하루 생존법을 익히느라 문화, 관광에 미처 눈 돌릴 여력이 없었다. 전철 타는 것도 서투른데 숙소 구하러 이리저리 뛰어다녔고, 슈퍼마켓에서 물건사기, 학생식당과 도서관 이용법 익히기 등등 모든 일상사가 낯설었다. 소르본느 어학원에 등록하고 헐레벌떡 뛰어 들어가다 코앞에 와 있는 노트르담을 보았고, 외환은행을 찾다 지쳐 벤치에서 쉬려다 가로수 위로 드러난 에펠탑을 보았더라는 식이다.
▲난 너의 피부를 읽는다=오후였고, 어두운 도서관 로비였고, 난 그럭저럭 무료하기도 하였다. 갖가지 공연전시 안내들이 늘어진 게시판을 훑어보다가 ‘나는 너의 피부를 읽는다’(Je lis ta peau)라고 쓰여 있는 심상찮은 브로슈어에 눈이 갔다. 아니, 붉은 금동색 배경에 형광 핑크로 빛나는 글씨의 이미지를 먼저 보았다고 해야 한다. 전단지를 펴보고서 ‘내가 와 있는 곳이 파리구나!’ 실감했다. 그것은 이 도시의 외곽에 있는 한 성당에서 있을 예정인 제니 홀처의 전시를 알리고 있었다. 제니 홀처(Jenny Holzer)라면 전광판 미술로 잘 알려진 미국의 대표적인 여성작가다. 뉴욕 타임스퀘어 광장 꼭대기에 느닷없이 ‘내 욕망에서 나를 지켜줘’(Protect me from what I want)라는 메시지를 대문짝만하게 날려서, 휘날리는 자본주의의 망토 아래 넋을 맡긴 채 오늘도 그 욕망을 제 것인 양 살아가는 우리들의 부산한 발걸음을 민망하게 했던 그녀였다. 그녀가 이번엔 ‘너의 피.부.를 내가 읽.는.다’며 또 한 번 우리의 심기를 불편하게 자극하려 드는 것이었다. 상처받기 쉬운 신체의 마지막 외곽인 ‘피부’.그리고 감시와 통제, 권위의 교묘한 행위인 ‘읽는다.’ 객지에서 만난 그녀가 반갑다.
▲신에게로 보내는 전자 텍스트=센 강을 끼고 있는 오스트렐리츠 역은 우리로 치면 용산역쯤 되려나. 출발과 도착을 알리는 기차역 특유의 울림 음은 나라마다 다를 게 없다고 느끼며, 난 근처에 있는 생 루이 성당을 찾는다. 무뚝뚝한 느낌의 오래되고 둔중한 성당 문을 밀고 들어서니 미사를 위해, 고해성사를 위해 띄엄띄엄 앉아있는 노인들이 눈에 들어왔다. 푸른 스테인드글라스를 통해 들어온 반쯤 누운 가을볕이 그들의 굽은 등을 비춘다. 성당을 전시장으로 선택했다면, 그리고 그녀의 오더독스한 작업경향으로 미루어 본다면 여기지 싶은 곳이 보였다. 풍수로 쳐도 한 가운데고, 거룩한 신성이 바로 당도할 것 같은 원형의 돔, 거기 그녀의 작품이 서 있었다.
예상했었지만 난 잠시 말을 잃었다. 작품은 세로로 솟은 전광탑을 상상하면 될 모습이었다. 바닥에서 시작되는 전자 텍스트들은 거대한 말의 기둥이 되어 성당 궁륭의 한가운데를 뚫고 천공으로 빠져나간다(사진3). 정확히 높이 36m, 사방 23m의 스틸 전광판은 성과 죽음, 인류의 폭력성과 광기, 그리고 전쟁에 관한 묵시록적 전자 잠언을 싣고 우주 어디론가 빠져나가고 있는 것이다. 아마도! 텍스트의 상승 속도와 내 독해 속도와의 어쩔 수 없는 간극! 끊임없이 솟구치는 텍스트들은 마치 인간이 신에게로 보내는 타전인 것도 같고, 신이 내려 보낸 계시의 번안 같기도 하다. -‘내 욕망에서 나를 지켜줘’중에서
2. 내가 너의 거울이 될게! -사진작가 낸 골딘 Nan Goldin
찬바람 부는 바닷가, 철지난 어느 유원지. 귀에 익은 ‘페일 블루 아이즈’(Pale blue eyes)가 창백하게 흘러나오고, 오랜만에 옛 친구들 셋이 모여 걷는다. 낸과 샤론, 그리고 브루스. 가죽잠바 주머니에 손을 넣고 어깨를 치며 그럭저럭 걷다가 바다로 트인 난간에 둘은 걸터앉고, 낸은 그들에게 카메라를 댄다. 재즈 바 가수 샤론은 에이즈로 그의 동성 애인을 잃었고, 매니징 에디터로 일하는 브루스는 얼마 전 양성 진단을 받았다. 멀리 수평선을 배경으로 그들의 쓸쓸한 미소가 낸의 카메라에 잡힌다. 이번엔 맞은편에서 셔터를 누르는 낸의 카메라가 비디오 화면에 잡히고, 흐르던 음악이 멈추면서 찰칵! 천천히 화면을 가로지르는 손 글씨는 ‘내가 너의 거울이 될게’(I'll be your mirror)라고 쓴다.
영국 BBC에서 방송된 이 필름은 미국의 사진작가 낸 골딘이 자신의 가까운 친구들을 인터뷰한 8mm 비디오다. 그와 친구들의 사랑과 우정, 추억과 회한을 담담한 내레이션으로 담고 있는 이 필름은 사실 호모 섹슈얼과 헤테로 섹슈얼, 트랜스젠더와 드랙 퀸, 히피와 마약 등 금기와 터부를 관통해 온 그들의 삶의 기록이고, 지난 세기 말 그들을 휩쓸고 간 에이즈의 상흔에 관한 기록이다.
▲낸 골딘, 도깨비불=오랜 파업 끝에 퐁피두센터가 문을 열었고, 낸 골딘의 전시 ‘낸 골딘, 도깨비불’(Nan Gloldin, le feu follet)은 예정된 개막일을 두어 주 넘기고서야 공개되었다. 파업으로 거부되었던 그와 그의 친구들은 이제 연일 줄이어 찾아드는 사람들의 행렬로 예정보다 20여일 넘도록 그곳에 묶여 있어야 했다. 대담하게 붉고 강렬하게 푸른 벽면들을 배경으로 낯익은, 혹은 낯선 사진들이 빼곡했다. 공식적으로 사백여 점이라지만 슬라이드까지 합치면 거의 천백여 점의 사진을 보아야 한다. 오전에 들어가서 어둑해져야 밖으로 나설 수 있는, 멀미가 날 정도로 고된 구경이었지만, 나는 설명하기 어려운 힘에 끌려 그 뒤로도 다섯 번을 더 찾아가 그의 전시를 보았다.
▲Drag Queens, ‘최후의 만찬’=그의 사진은 장황한 미학적 설명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그 자신에게는 이미지로 써 온 수십 년간의 일기일 뿐. 그러나 그와 친구들을 비추는 사진을 한참 들여다보고 있자면, 그들의 삶의 굴곡을 나도 따라 넘게 되고, 어느덧 오래 전부터 그들 중 한명이었던 것처럼 낯선 삶에 익숙해지는 경험을 하게 된다. 그의 사진은 영화에 가깝다. 다큐멘터리처럼 한 인물의 긴 세월을 따라잡은 두루마리 필름이면서, 정지화면 안에서도 온 생을 읽어낼 수 있는 내러티브가 그 안에 함축되어 있다.
낸은 바텐더로 일했다. 성과 논리의 관습에서 벗어나 있는 드랙 퀸들은 낸을 매혹시켰다. 그들은 낸의 친구가 되었고 삶의 중심이 되었다. 낸은 그들을 따라 인생을 함께 살며, 그들의 비밀과 쾌락과 슬픔을 함께 나누었다. 마치 가족 앨범을 만들 듯 그들을 찍고 또 찍었다. “난 새 가족을 찾았다. 그들을 잃지 않기 위해서 내 삶을 고정시켰고, 내 삶을 구원하기 위해서 그들의 사진을 찍었다.” 낸의 초기작인 ‘에스플라나드의 피크닉’은 부활절에 강가에 둘러앉아 음식을 나누며 즐거운 한때를 보내고 있는 당시의 가족들을 담고 있다. ‘자연의 성’이라는 신의 율법을 거슬러 살아가는 자들. 그들이 둘러앉은 자리처럼 ‘경계’에서 살아가는 자들의 만찬. 이들은 함께 모여 그들만의 제의를 만들고, 그들만의 빵을 나눈다. 기이하고 역설적이게도 다빈치의 ‘최후의 만찬’을 떠올리게 하는 이 사진 앞에서 나는 한참 동안 서 있었다. “경건함이란 무엇인가?” 스스로 되물으면서. 강물을 따라 그들의 웃음소리도 흘러가고, 시간도 흘러가고, 그들 중 몇몇은 에이즈와 약물로 사라져 간다. -‘내가 너의 거울이 될게’ 중에서
3. 기이한 풍경, 극단이 함께 살기 -에바 헤세 Eva Hasse
“30분밖에 남지 않았어.” “뭐가?” “기차가 갈라진다고.” “뭐라고? 그런 법이 어딨어?” “기차는 30분 후면 둘로 갈라져서 하나는 뮌헨으로 가고 하나는 프랑크푸르트로 가. 서두르는 게 좋을 걸? 새벽에 뮌헨에 떨어져서 발 구르지 않으려면….” “무슨 매트릭스 영화도 아니고, 달리던 기차가 무슨 수로 둘로 갈라진담?”
프랑크푸르트로 달리는 기차 안이다. 나는 프랑크푸르트 옆의 소도시 비스바덴으로 에바 헤세의 전시를 보러 가는 중이다. 몸을 모로 접어서 겨우 잠에 끼어든 나를 깨운 건 기차 검표원이었다. 그녀는 내 차표를 보더니 난감한 표정을 짓는 것이었다.
▲뒤로 가는 기차, 뒤로 가는 남과 여=열차는 요란한 굉음과 함께 철도를 밀며 나아가고, 나는 뒤 칸으로, 뒤 칸으로 향한다. 난간 문을 수없이 여닫으며 차량을 건너오다가 생각한다. ‘하나로 매달려오던 열차가 느닷없이 갈라진다는 한밤중 홍두깨 같은 얘기는 어쩌면 이번 여행의 의미를 암시하는 심리적 상징’일 거라고….
지난여름 내내 계속되던 혼돈으로부터 떠나고 싶었다. “행선지가 다른 두 인간이 함께 산다는 게 도대체 뭐냐?” 그녀가 나를 부른다. 맨 뒤 차량 안벽에 쓰인 ‘종착역 프랑크푸르트’ 안내판을 눈 비벼 확인하고 시트에 몸을 붙였다. 얼마 뒤, 간이역에 멈췄던 열차는 ‘끼기긱’ 단말마의 비명을 지르더니 거짓말처럼 뒤로 달리기 시작한다. 열차를 묶고 있던 중간 고리를 끊어낸 것이다.
▲붉은 젖꼭지=열여섯 살 에바는 그녀의 아버지에게 이런 편지를 쓴다. “나는 예술가예요, 난 늘 다른 사람들과 다르게 사물을 느끼며 살고 싶어요. 우리를 예술가라고 부르는 이유지요.” 오래 전부터 예술가였기 때문일까? 그녀는 서른넷에 뇌종양으로 숨진다. 그러나 그녀는 죽음의 순간까지 미술사의 철로를 바꾸게 될 무수한 작품들을 만들어 냈다.
전시장으로 향한다. 일요일인데도 묵묵히 직장으로 모여드는 독일 근로자들의 행렬을 거슬러 걷는데, 언뜻 그들 사이로 그녀가 비친 것 같다. 다가설수록 선연해지는 붉은 젖꼭지(사진2). 그녀다. “그녀의 유령이라도 만나고 싶어.”
전시포스터가 안내하는 길을 따라 박물관에 도착했지만, 차마 들어가지 못한다. 세월에 검게 그을린 미술관 건물은 양 날개를 펼친 박쥐 모양이었다. 햇살 드는 길 건너에 한참 서 있자니 그녀와 마주한 심정이 된다. “나 왔어요.” 그녀에게 말한다. 지금의 내 나이보다 한참 어린 그녀였지만 자애로운 할머니의 품으로 나를 반겨 안듯 말한다. “어여 와, 고생했쟈?” 난 찔끔 울 것도 같다. 박쥐의 아래쪽 한가운데 갈색으로 닫혀 있던 문을 밀고 그녀에게로 들어간다. -‘기이한 풍경, 극단이 함께 살기’ 중에서
4. 흩어지는 말 -낸시 스페로 Nancy Spero
난 말을 잘 못한다. 좀 심한 장애다. 혀는 굳어갔고, 배설되지 못한 의식은 목 안에 고여 병목현상이 됐다. 소통하지 못하는 자아는 출구를 찾지 못한 채 내압을 올리며 부풀어 오르고, 결국 숨을 참지 못한 채, 불던 풍선의 주둥이를 놓아버렸을 때처럼 피시식 바람을 빼며 내달아서 마르크시즘을 떠난 어딘가에 불시착했다. 공식적인 언어에 대한 공포가 얼굴을 달아오르게 했고 셋만 모여도 말을 잃었다. ‘말과의 불화’라는 고통스런 시간들이 오래 지속되었다.
▲세우는 말, 넘어지는 말=내 언어가 억압되었던 것은 사실 명백히 열등해서라기보다는, ‘다.르.기.’ 때문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은 그리 오래지 않은 일이다. 모순되고, 고정된 의미로 표현하기 어려우며, 자꾸 질질 흐르고, 말을 맺는 순간 그 말이 아니며, 네스 호의 공룡처럼 물위로 드러난 머리보다 물밑에 웅크려 있는 거대한 덩어리로 고통스러워하는 말. 이성적으로 올바르지 않은 말, 합리적이고 착하지 않은 이 이상한 말의 존재를 받아들일 수 있게 된 것은 ‘여자의 말’은 다르다고 하는 이들을 만난 뒤부터였다.
▲언어에 집착하는 화가가 있다=‘혀 잘린 자의 말, 말 못하는 언어.’ 내가 낸시 스페로의 작품을 처음 보았을 때, 목구멍에 걸린 복숭아씨가 빠져나오듯 얼얼했던 것은 이러한 연유다. 이토록 언어에 집착하는! 화가! 가 있다!
한 인물이 있다. 분노와 광기가 드러나는, 여자인지 남자인지 알 수 없는 얼굴의 주인공은 아르토. 그의 벌린 입 사이로 뻗어 나온 긴 혀가 화면을 거칠게 가로지른다. 그것은 혀라기엔 너무도 화가 나 있어서 금방 사정이라도 해 버릴 듯한 물건처럼 긴장해 있다. 극단적으로 부풀어 오른 혀. 화면 뒤에는 미쳐버린 이 시인의 원고가 프린트되어 있다. 때론 방점도 없는 말들의 덩어리. 때론 더듬느라 산만한 말들. 때론 오랜 말없음. 그 글들은 텍스트라기보다는 웅얼대는 이미지다.
스페로는 돌돌 풀어지는 두루마리 파피루스 위에 새로운 말을 그린다. ‘태초의 말’은 어머니의 말로 다시 쓰는 역사다. 이 연작의 도입부를 클로즈업해 보자. 직립한 뱀과 정면으로 서 있는 여성이 있다. 그녀는 자웅동체처럼 중성적이다. 구약 속의 파트너인 뱀 - 혹은 혀, 혹은 지혜, 혹은 언어 - 과 고요하게 당당히 맞장 뜨고 있는 여성….
‘태초의 말’에서 여자의 몸은 상형문자가 된다. 몸이 만들어내는 동작은 자음이 되고 모음이 된다. 만나고 흩어지면서 목구멍을 울리며 발음된다. 흐르듯이 고였다가, 했던 말을 또 하다가, 계속 그 말만 하다가, 이유 없이 딴 길로 샜다가, 머뭇거리다가, 죽어버렸다가 일어서는 희한한 말의 춤을 춘다. 그녀들은 원시 그대로의 가랑이를 힘껏 벌려 뛰어오르기도 하며, 전쟁으로 아이를 잃고 훠이훠이 걷기도 한다. 태초의 수렵 인처럼 벌판을 내달리기도 하며, 가혹한 성적 고문으로 죽어 뒹굴기도 한다. -‘흩어지는 말’ 중에서
5. 나는 방아쇠를 당긴다! -니키 드 생팔 Niki de Saint Phalle
그녀가 죽었다. 다가올 죽음을 예감한 듯, 그녀는 자신의 작품 170여점을 니스의 현대미술관에 기증했고, 1년 넘어 준비된 이 기증전은 그녀의 죽음에 대한 애도를 담게 되었다. 그녀의 육신은 프랑스의 국보 지식인, 예술가들과 함께 파리의 몽파르나스에 묻히게 되었다. 하지만 그녀가 죽음을 넘어 영원히 머물 곳, 그녀의 분신들이 살아갈 곳을 니스로 정한 것은 왜일까?
그녀가 처음으로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 것은, 결혼 이후 두 아이를 낳고 극도의 분열 증세로 입원하게 되었던 니스의 병원에서였다. 그림 그리기는 그녀가 어두운 시절을 걸어 나오는 계기가 되었고, 이후 그녀는 예술가가 되기 위해 남편과 아이들을 떠난다. 자신을 구하고 결국 세상의 미술을 구하기 위해.
▲다친 풍경 혹은 아상블라주=‘우여’와 ‘곡절’까지 모두 데리고 일행은 니스에 도착했고, 아이들의 긴밀한 협조를 구하기 위해 아이스크림으로 매수한 뒤 결국 미술관에 들어섰다. 그러나 정작 작품을 볼 수 있는 시간은 폐관까지 한 시간 반밖에 남지 않았다. 먼 길, 짧은 만남.
전시장에서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두툼한 석고 화면 가득 무언가가 덕지덕지 붙어 있은, 그러고도 아직 성에 차지 않았다고 말하는 작품들이었다. 오는 길 내내, 혼자 속앓이로 지친 나는, 그 거친 표면-깨진 컵과 버려진 인형, 찌그러진 플라스틱 조화, 면도날, 망가진 열쇠-들을 마음으로 만진다. 다친 땅 위를 미친년 산책하듯 훠이훠이 눈으로 쓸고 다닌다. 녹슨 톱날에 베이기도 하고, 끊어진 철망 끝에 찔리기도 한다. 뒹구는 못 머리를 건너 돌기도 하고, 치료받지 못한 채로 아물어버린 흉터들에 가만히 엄지발가락을 밀어 넣기도 한다.
희한하게도, 끓던 심정들이 가라앉는다. “그래서 그랬구나!” 한다. 버려진 파편들, 그 불구 고아들을 그녀는 구석진 골목에서 거두어 와서 작품 속에 하나하나 묻었겠구나. “새로 나라, 새로 나라” 하면서. 그러면서 어둠 속에서 으르렁대는 자신의 감정들에게도 “새로 나라, 새로 나라” 했었겠구나. -‘나는 방아쇠를 당긴다’ 중에서
6. 자신의 의지로 자신을 태어나게 한 아티스트-프리다 칼로 Frida Kahlo
파리 북 역에서 런던 행 유로스타를 타자면 미리 입국 심사를 거치게 된다. 심사가 까탈스럽고 불친절해서 기분을 상하기 일쑤다. 이번에도 곰처럼 덩치 큰 영국 직원이 의심의 눈초리로 부당한 요구를 한다. 런던~파리 왕복 티켓을 보여주고 있는데도 유럽을 떠나는 비행기 표를 보여 달라니…. 하루짜리 왕복 여행에 한 달 뒤 출발하는 비행기 티켓을 들고 다닐 사람이 어디 있단 말인가? 피부가 다르다는 이유로 적국 사람으로 의심받고 있는 상황에 분노가 일어, 곰의 얼굴에 달려들어 낯을 할퀴는 승냥이를 상상하며 그녀를 노려보고 있다가 드디어 들어가도 좋다는 사인을 받는다.
기차는 텅텅 비었다. 지난 7월 7일 출근길 런던 지하철 주변에서 터진 연쇄 폭탄 테러 탓으로 유럽이 발칵 뒤집혔었다. 테러 덕분에 싼 표를 구해 가고는 있지만 심란할 수밖에…. 객차 짐칸에 배낭을 부리고서야 새벽 북새통의 긴장이 풀리기 시작한 나는 시디플레이어를 건다. 흐르는 음악은 영화 ‘모터사이클 다이어리’(The Motorcycle Diaries)의 주제음악.
홍안의 청년 체 게바라가 친구 알베르토와 그들의 모터사이클, 포데로사의 시동을 걸고 있다. 말 그대로 ‘세상이 그를 부르기 전, 세상이 그를 알아주기 전, 그의 삶을 바꾼 여행’이 시작되었다. 기타의 맑은 울림 속에서 이들의 오토바이가 달려 나가며 전원과 강물들을 뒤로 흘려보내고 있다. 뒷자리에 앉은 체는 두 팔을 활짝 벌리고 스쳐 지나는 바람과 길들을 애무하고 있을 것이다.
▲마르크스주의가 병든 자를 낫게 하리라=나는 지금 또 다른 혁명가를 만나러 가는 길이다.
런던 테이트 갤러리에서 대규모의 프리다 칼로 전이 열리고 있다는 소식은 빅 뉴스였다. 이프 창간 당시 특집의 주제 이미지로 그녀의 작품 ‘작은 사슴’을 차용했었고 우리의 일터에는 온통 그녀의 작품들이 걸려 있어서 나는 마치 그녀와 한 시절을 지내 온 동료 같은 착각이 들기도 한다. 너무나 익숙하되 또 늘 생경한 듯한 그녀의 작품들은 맹렬한 자장을 뿜어내면서 매혹과 동시에 부담을 주곤 했다. 애증을 함께한 오랜 지기를 만나러 가듯 나는 들떠 있었다.
체 게바라와 프리다 칼로. 두 사람의 삶은 달랐지만 모두 메스티소의 영광을 실천한 혁명가였다. 1907년생인 프리다 칼로는 늘 자신이 멕시코 혁명이 일어난 1910년에 태어났다고 주장했다. 6살 때 소아마비를 앓아서 늦은 나이에 학교에 들어가게 된 조숙한 프리다가 친구들에게 나이를 속이려고 한 거짓말에서 시작됐다나. 멕시코 혁명과 자신의 출생 연도를 동일시함으로써 자신을 더욱 신비화하고 싶었던 그녀의 자의식이 말해 주듯 그녀는 평생을 두고 마르크스주의의 이상을 버리지 않았다.
몸도 붓도 제대로 가눌 수 없었던 마지막 시기, 그녀는 ‘마르크스주의가 병든 자를 낫게 하리라’, ‘프리다와 스탈린’ 등의 작품을 남겼다. ‘마르크스주의가 병든 자를 낫게 하리라’에서 붉은 경전을 들고 있는 그녀는 목발을 양쪽으로 던져 버리고 처음으로 울지 않고 있다. 살아야 할 유일한 이유는 혁명에 있다고 강조하던 그녀는 정치적 신념이 인류를 비참으로부터 구원하리라는 믿음을 이 그림에서 표현한다. 부서진 척추를 보호하기 위해 입었던 갑옷 같은 석고 보정기에도 그녀는 낫과 망치와 별들을 그려 넣었다. 임종한 그녀의 시신을 덮었던 붉은 천위에 새겨진 것과 같은 문장이었다.
체가 전설의 체 게바라가 된 것은 프리다가 죽던 해인 1954년 멕시코에서였고, 카스트로와 만나 쿠바 혁명의 뜻을 세우는 것도 그 즈음 멕시코에서의 일이다. 기차는 이제 도버 해협을 달린다. 바다 밑 터널을 달리는 동안 사방은 한동안 칠흑 같은 장막일 터였다. -‘자신의 의지로 자신을 태어나게 한 아티스트’ 중에서.
“제미란이 여성미술가(화가)의 작품을 읽어 내는 방식은 이렇다. 손으로 느끼고, 발로 ‘즈려밟고’, 통째로 삼키고, 씹어서 음미하고, 마침내 몸을 섞어서 그것과 하나가 되고야 만다. 대상과 거리를 둔 냉철한 비판과 논박이 그녀에게는 애당초 없다. 그녀의 글은 여성작가의 혼을 내려 받은 공수인 것이다. 지난 11년 동안 제미란의 여성미술 비평은 그렇게 계속되었다. 그런데 그녀의 공수가 또 탁월한 언어예술이어서, 여성미술가들의 시각예술은 제미란의 언어와 섞이면서 또 하나의 작품으로 재탄생한다. 경계를 허물어 새로운 창조를 이루어내는 힘, 그것이 그녀의 글이 가진 강력한 미덕이다.” -박미라 감정치유 에세이 ‘천만번 괜찮아’ 저자
“제미란의 글은 뜨겁다. 조심해야 한다. 그가 찾아다니는 여성 미술가들도 뜨겁다. 조심해야 한다. 이 불친절한 세계에서 여성 미술가로 사는 것이 어떤 것인지 남성인 나는 잘 모른다. 도저히 짐작조차 할 수 없다. 제미란은 그에 관해 말한다. 남을 찾아다니는 것이자 자신을 찾아다니는 일인 제미란의 순례는 그래서 흥미롭다. 그가 책을 출판해도 되겠느냐고 물었을 때 나는 기꺼이 그래야 한다고 했었다. 그리고 그 결과가 여기 있다. 느슨하고 감상적인 미술 소개나 순례와는 다른, 포크로 생고기를 찍어 세심하게 맛보는 것 같은 그의 시선과 글을 느껴보기 바란다. 여성-예술가로 살아가는 자들의 고통, 저항, 치유, 공감, 반성, 조응, 파괴, 울음, 감탄….” -강홍구 작가. ‘미술관 밖의 미술관’의 저자
“난 그녀가 해설해 주는 또는 읽어서 보여주는 여성 화가들의 그림 이야기를 읽으며 내 영혼의 눈을 떠갔다. 피를 철철 흘리며, 때로는 죽음에 이르는 광기로 번득이며 그림을 그려 나간 여자들의 이야기와 그 그림들을 통해 내 영혼을 보았고 그녀들의 영혼 또한 보았다.” -류숙렬 시인 (사)문화미래 이프 출판위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