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선미너머 아름다움의 봄
“진선미너머 아름다움의 봄”
-2016년 윤종갑 개인전 '동내의 숨- 바라보기 형태연구1' 윤슬갤러리 전시회를 준비 하며
학생이 질문을 하였습니다.
“왜 이곳에서 전시를 하세요, 압구정동이나 서울에서 하면 좋지 않나요?”
고등학교 여학생이었습니다. 학생의 질문은 소소한 질문이었으나 저는 그 질문을 오래도록 제게 다시금 물음 하였습니다.
“왜 여기서 전시를 하였나, 왜 또다시 여기서 전시를 하나, 왜 이런 생각을 하지!”
당시, 뭐라 학생에게 대답을 하였을 텐데 잘 기억이 없습니다. 다만, 뭔가 마음을 들킨 기분이 들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아마 그냥, 여기가 어때서 그러니, 거기서 하면 네가 이런 전시를 보지 못하잖아, 아저씨가 부족하여 그러지 등 일반적인 이야기를 하지 않았을까 생각하여 봅니다.
사실 학생의 위 질문에 대한 답은 첫마디 전시회 도록에서 설명되어 있습니다. 전시도록에는 “작은 화실을 열고 다가선 배움을 개인전시회를 통해 내려놓고자”한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또 전시기획의 특징으로 ‘배움-그림 빚기’(이하 배움이라 약술함)라는 주제로 세 마디의 개인 전시회를 준비하고 시간을 갖고 순차적으로 전시회를 개최할 것이라는 구체적인 계획도 알림하고 있습니다.
결국 학생의 질문을 스스로 다시금 물음 한 것은 저 자신을 다시금 돌아보는 계기가 되었던 것입니다. 숨을 촉감 할 때 숨이 느껴지고 옷을 감각할 때 자신이 옷을 입고 있음을 알 수 있듯, 학생의 질문은 다시금 저자신의 공부를 살피는 연유가 되었던 것입니다. 꼭 선생님이 제게 너는 왜 너니 하고 제 껍질을 일깨워 주시는 할(喝)과 같았는지 모릅니다.
“왜 이곳에서 전시를 하세요, 압구정동이나 서울에서 하면 좋지 않나요?”학생의 물음에, 저는 저에게“왜 여기서 전시를 하였나, 왜 또다시 여기서 전시를 하나, 왜 이런 생각을 하지!”다시금 자문하며 화답하여 봅니다.
첫 번째 화답은 작업이 있고 전시장이 있기 때문입니다.
두 번째 화답은 전시를 기획하고 두 번의 전시를 여기서 했기 때문입니다.
세 번째 화답은 참이 무엇이고 무엇이 가치인지 생각하였기 때문입니다.
학생의 일깨움은 저 자신의 배움의 사실이 되었습니다. 학생의 물음은 낮은 일깨움이나, 그 물음에 답이 아닌 저의 사정을 보도록 하였습니다. 저의 지금의 가치를 또렷이 확인 하고 스스로의 삶의 조건을 빚도록 하였습니다. 또 학생의 물음에서 학생 스스로 구하는 구도가 있음을 알 수 있었습니다. 이는 보편의 진선미너머 나다움의 봄을 이성하게 하였습니다.
우리는 사물이나 현상의 모습을 보면서 ‘나’ 나름의 모습에는 익숙하지 않습니다. 또한 ‘나다움’의 보임에 서툰 것이 사실입니다. 흔히 일반의 용어로 관조라는 말의 의미를 생각하여 볼 수 있습니다. 우리는 자신을 들여다 볼 수도 또 다른 구경(究竟)으로 ‘나’로 바라봄이 가능합니다. 전시는 분명 하나의 이벤트입니다. 그러나 또 다른 시각에서 뜻함의 그림이고 입체그리기로 과학이며 ‘나그리네’로 보임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전시는 좋은 전시장도 중요하지만, 모음, 배움, 만남, 지향 등 전시를 통한 삶을 살림하는 일이기도 합니다. ................